1. 로부스타 커피의 쓴맛, 그 안에 숨겨진 매력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아마 한 번쯤은 ‘아라비카’와 ‘로부스타’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아라비카 품종만이 최고인 걸로 생각하죠. 저도 그랬어요. 커피를 좋아하면서도 늘 아라비카만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그 품종만이 최고인 줄 알았죠. 향이 좋고 부드러우며 그 맛에 익숙해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날, 베트남 여행 중에 마신 한 잔의 커피가 제 고정관념을 깨트렸습니다. 바로 ‘로부스타 커피’였죠. 그래서 요즈음에는 아라비카 커피만 고집하던 제가, 로부스타 커피에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쓴맛과 거친 질감 때문에 적응이 잘 안되었지만 , 어느 순간부터 그 ‘진하고 묵직한 한 잔’이 생각나더라고요. 지금도 집에서는 로부스타 이스턴트 커피를 자주 마신답니다. 부드럽고 얌전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입맛을 잡아 끄는 매력 때문입니다.
10여 년 전 베트남의 호이안 올드타운의 작은 노천 카페에서 마신 ‘카페 쓰어다(연유커피)’ ,그리고 Ca Phe Den 한 잔... 강하게 내린 진한 커피와 거기에 달콤한 연유가 섞여 만들어낸 맛은 놀라웠습니다. 바로 로부스타였습니다. 거칠고 투박할 거라 생각했던 로부스타 커피가, 진한 향과 크레마로 예상치 못한 매력과 함께 저를 사로잡는 순간이었죠. 익숙하지 않은 맛이지만 자꾸만 커피를 홀짝이게 되더군요. 그 이후로 저는 로부스타 커피의 매력을 천천히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이 반전 매력의 로부스타에 대해서 잠시 알아가볼까 합니다.
2. 로부스타 커피의 기원 - 어디서 왔을까?
로부스타 커피의 학명은 Coffea canephora입니다. 아프리카의 콩고와 우간다가 원산지이고, 이후 아시아의 베트남과 인도 그리고 남미로 널리 퍼졌죠. 지금은 베트남이 세계 최대 로부스타 커피 생산국이며,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베트남에서 로부스타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생활 속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로부스타는 해발 200~800m의 낮은 고도에서도 잘 자라고, 병충해에 강하고 기후 적응력도 좋아서 재배가 비교적 쉽습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인스턴트커피, 믹스커피 등 대량 생산용 커피로 널리 활용되어 왔습니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아이보리코스트 등도 로부스타 생산국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아주 오래 전에 베트남의 호이안에서 처음 마셨던 ‘카페 쓰어다(연유커피)’ 와 '카페 덴' 한 잔의 첫맛은 아직도 잊히질 않습니다. 뜨거운 로부스타의 깊은 쓴맛이, 때로는 그 것이 얼음과 연유 사이에서 참 기분 좋게 녹아들더라고요. 급기야는 이 커피의 모든 것이 궁금해서 베트남 호이안에서 coffee class까지 참석했었지요.
3. 로부스타 커피의 특징 - 어떤 맛일까?
로부스타 커피는 카페인 함량이 아라비카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높습니다. 그래서 맛도 확실히 강하고, 특히 쓴맛이 두드러집니다. 향에서는 초콜릿, 견과류, 흙내음, 나무 향 같은 묵직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로부스타를 마셨을 땐 솔직히 오직 쓴맛만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물을 추가해서 부어도 부어도 그 쓴 맛은 줄지가 않더군요. 산미나 향미는 거의 없고 바디감은 매우 진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숨은 진득한 바디감과 두꺼운 크레마는 아라비카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답니다. 이 때문에 로부스타는 에스프레소 블렌드에서는 꼭 빠지지 않는 존재로서 특히 에스프레소 블렌드에서 로부스타는 그 진가를 발휘한다는 것을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는 알게 되었지요. 이탈리안 스타일의 진한 에스프레소에는 로부스타가 섞이면 크레마가 풍부하게 올라오고 맛도 묵직해져서 훨씬 만족감 있는 한 잔이 됩니다. 이탈리안 바리스타들이 로부스타를 섞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 깊이 있 고 묵직한 맛 덕분에 블렌딩하면 한층 더 힘 있는 커피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4. 로부스타의 평가 - 왜 저평가되었을까?
(1) 로부스타 커피에 대한 오해
로부스타는 오랫동안 ‘싸고 질 낮은 커피’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향미가 떨어지고 쓴맛이 강하다는 이유에서였죠. 실제로 대량 가공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기에, 고급 커피로 취급받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모든 로부스타가 그런 것은 아니며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베트남, 인도, 브라질 등지에서는 로부스타의 스페셜티 커피로서의 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연구와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워시드, 허니 프로세스 같은 정제 방식이 도입되면서 고급 로부스타도 시장에 나오고 있으며, 고산지대에서 자란 로부스타, 워시드 방식으로 가공된 로부스타는 정말 그 퀄리티가 다릅니다. '써니 티모르 (sun-dried Timor)' 같은 스페셜티 로부스타는 바리스타들 사이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저도 역시 최근에 ‘써니 티모르’나 "쭝 응우옌 레전드" 같은 고급 로부스타를 마셔봤는데, 확실히 기존 인스턴트 커피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쓴맛은 여전했지만, 그 안에는 아라비카 못지않게 섬세한 초콜릿 향과 독특함을 감추고 있었으며 풍부한 바디감과 밸런스는 은근한 매력을 어필함이 느껴졌습니다. 아라비카 품종에 비해 열등하다 폄하되던 부분들이 로부스타의 특색으로 변화하는 진화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2) 로부스타 커피의 활용 - 어디에 쓰일까?
로부스타는 믹스커피나 인스턴트커피에 자주 쓰입니다. 아라비카에 비해 카페인 함량이 높고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에 대량생산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랍니다. 보다 다양하게 로부스타가 가진 특성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에스프레소의 필수적인 블렌딩 요소인 바디감과 크레마를 위해 아라비카와 블렌딩하여 사용합니다. 이탈리안 스타일의 진한 에스프레소에는 로부스타를 섞어 풍부한 크레마와 묵직한 바디감을 연출해냅니다. 한편, 로부스타는 대량 생산에 적합한 특성 덕분에 인스턴트 커피 & 믹스커피에 가장 많이 쓰입니다. 베트남 연유커피(카페 쓰어다)나 인도의 인디안 필터 커피 등 강한 맛이 필요한 전통 커피에도 활용되며, 높은 카페인 함량 덕분에 에너지 음료에도 활용도가 높습니다. 이것은 최초로 커피의 효능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된 , 커피 열매를 먹은 염소들이 매우 활동적으로 뛰어다니게 된 기원적 사실과도 연관이 될 것 같습니다.
(3) 로부스타의 장점과 단점
장점
●카페인 함량이 높아 에너지 부스터로 효과적입니다.
● 병충해에 강하고 기후 적응력이 뛰어나 재배 용이합니다.
● 바디감과 크레마가 풍부해 에스프레소에 최적화된 품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점
● 향미가 다소 거칠고 쓴맛이 강해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립니다. 로부스타의 약점일 수 있습니다.
● 단독 추출 시 맛이 복합적이지 않아 단순하고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블렌딩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5. 로부스타 커피의 미래-기후 변화 시대의 대안 커피(?)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로 아라비카 커피의 재배 환경이 위협받으며 커피 원두 생산은 감소하고 원두 가격이 급격히 오르고 있는 지금, 생존력과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은 로부스타는 점점 더 주목을 받으며 커피 산업의 중요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최근에는 “로부스타도 맛있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고급 로부스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베트남이나 브라질 등의 로부스타 생산국에서도 고품질의 로부스타 커피를 만들기 위해 다방면으로 품질 개선을 위한 연구와 개발을 지속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각국의 바리스타들도 이 품종에 점차 주목을 하여 로부스타만으로 커핑을 하거나, 스페셜티 대회에 사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맛의 세계가 열리고 있다는 게 가장 흥미로운 일입니다. 로부스타는 더 이상 ‘서브용 커피’가 아니며 다른 개성과 매력을 가진 또 하나의 커피 세계인 것입니다.
예전엔 익숙한 아라비카만 고집했던 저도, 요즘엔 로부스타에 대해 더 많은 흥미와 숨겨진 맛의 매력을 찾아가고 있답니다. 오죽하면 베트남에서 일부러 로부스타 coffee class까지 참석했을까요. 커피에 관심있는 분들이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이 커피를 마셔보지 않았다면, 로부스타 한 잔으로 새로운 경험을 해보시길 조심스럽게 추천드립니다. 쓴맛 뒤에 숨겨진 진짜 매력을 경험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고급 로부스타를 마시는 경험은, 마치 평범하게 지나치던 카페에서 숨겨진 보석 같은 바리스타를 만난 기분일 수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깊이와 정성이 담긴 커피 한 잔처럼요. 그 강한 쓴 맛과 품부한 바디감은 묘한 매력으로 당신을 지속적으로 끌어 들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