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커피를 진지하게 마주했을 때, 저는 맛과 향만을 기준 삼아 “좋은 커피”를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커피에 조금씩 빠져들수록, 흔히 말하는 좋은 커피를 접하고 찾아 마실수록, 그 안에 숨겨진 ‘등급’이라는 개념은 마치 와인을 처음 배울 때처럼 매우 섬세하고도 복잡한 퍼즐처럼 느껴졌습니다. 도대체 좋은 원두란 무엇일까? 무엇이 스페셜티 커피를 특별하게 만들며 애호가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것일까?
사실 커피의 등급은 커피가 내 손에 닿기 훨씬 전, 재배지의 농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세계 각국은 자국의 커피 품질을 표준화하고, 수출입 과정에서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각자의 기준에 따라 등급 분류 체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이는 매우 정형화되고 체계화된 시스템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사용되는 기준은 SCA(Specialty Coffee Association, 스페셜티 커피 협회)의 분류법입니다. 이 기준은 생두의 외형적 결점 수와 컵 프로파일(맛 평가)을 중심으로 커피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커피의 종류를 선택하거나 커피숍에서 선택해 놓은 한 잔을 마실 뿐이지만, 커피가 그 잔에 담기기까지 수많은 기준과 분류의 과정을 거친다는 걸 알고 나면 그것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소중한 과정의 산물로 우리에게 더 깊게 다가올 것입니다.
1. 커피 등급의 주요 요소
1) 가장 기본이 되는 기준은 결점 수(defect count)입니다. 결점이란 곰팡이가 핀 원두, 깨지거나 미숙한 원두, 또는 이물질 등 커피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SCA 기준에서는 350g의 생두에서 결점 수가 5개 이하일 경우, ‘스페셜티’로 인정받습니다. 이 수치가 많아질수록 일반 커머셜 커피 또는 하급 등급으로 분류되는 것입니다.
결점 수는 생각보다 엄격합니다. 단 하나의 결점이 전체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농장에서 생두를 일일이 손으로 고르는 작업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 하나의 정성 어린 땀이 깃든 선별 과정이 됩니다.
2) 두 번째 기준은 스크린 사이즈(screen size), 즉 원두의 크기입니다. 원두는 일반적으로 1/64인치 단위로 측정되며, 숫자가 클수록 더 큰 원두를 의미하는데, 예를 들어 사이즈 18은 18/64인치 크기를 뜻하며, 크고 균일한 원두일수록 높은 등급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크기만으로 품질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같은 품종 내에서 일정한 크기와 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가공이나 추출에서도 일정한 결과를 내기 쉽기 때문에 이 분야는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3) 그 외에도 수분 함량, 밀도, 향미 평가, 재배 고도, 가공 방식 등 다양한 요소들이 등급 판단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특히 고지대에서 자란 원두는 성장 속도가 느린 만큼 밀도가 높고 향이 더 깊어, 프리미엄 커피로 분류되기 쉽습니다. 저는 그런 고지대 커피 특유의 묵직하면서도 청량한 느낌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것은 맛이라기보다는 느낌과 감정에 가까운 인상으로 남습니다.
2. 주요 국가별 커피 등급 기준
커피 생산국마다 각자의 고유한 특색에 따라 각기 다른 기준으로 등급을 나누는 것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어떤 나라는 생두의 외관에 초점을 맞추고, 또 어떤 나라는 향미와 맛을 더 중시하기도 합니다. 각 국가별로 간략하게 등급 기준을 알아보겠습니다.
● 에티오피아는 컵 테스트(관능 평가)를 중심으로 등급을 나눕니다. G1부터 G9까지 있으며, 가장 윗자리의 G1이 가장 높은 품질입니다.
● 브라질은 결점 수를 중심으로 NY(New York) 시스템을 적용하며, NY2는 결점이 거의 없는 고급 생두를 의미합니다.
● 콜롬비아는 원두 크기를 기준으로 Supremo, Excelso 등으로 구분하며, 가장 크고 품질이 우수한 등급이 Supremo입니다.
● 케냐는 AA, A, AB, C 등으로 나누며, 이 또한 크기와 밀도 중심입니다.우리에게 익숙한 AA등급이 최상의 등급입니다.
●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주로 로부스타 품종을 재배하며, 크기·결점 수·가공 방식 등을 조합해서 등급을 매기고 있습니다.
제가 베트남에 머물던 어느 날, 로부스타 생두를 손으로 일일이 골라내는 농부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햇살 아래 작은 그늘 하나 없이, 오로지 농(Nón Lá) 하나에 얼굴을 묻고 묵묵히 원두를 선별하던 그들의 모습은, 커피 등급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숫자나 시스템이 아닌, 사람의 손과 땀과 정성이 만든, 지극히 정성스러운 과정의 품질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 장면은 아직도 마음속에 선명한데, 그것은 차라리 엄숙한 의식과도 같았으며 그래서 좋은 커피는, 맛과,느낌과 판단을 넘어서는 감동일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3. 좋은 커피와 등급
결국 커피의 등급은 ‘맛있는 커피’ 또는 “좋은 커피”를 위한 하나의 출발점일 뿐입니다. 스페셜티 커피라 해도 내가 즐기지 못하면, 그건 내게 맞지 않는 커피일 수 있는 것이지요. 반대로 어떤 커피는 등급에 상관없이 마음을 울리는 순간을 경험시켜 주기도 합니다. 저는 가끔, 우연히 들른 평범한 커피숍의 라떼 한 잔 속에서 등급과는 무관하게 감동을 느끼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담긴 온기, 바리스타의 손길, 그리고 나만의 하루가 어우러질 때 그 커피는 그날의 최고가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분명 등급이 우리가 커피를 이해하고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특히 커피 원산지나 가공 방식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지침서가 되어줄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상태에서 그 사람을 선택할 때 그의 이력서가 선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듯이, 어떤 커피를 고를지 고민될 때, 등급은 그 커피의 ‘이력서’를 들여다보는 좋은 출발점이 되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래도 결국... 커피는 느낌 아닐까요?